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문단 편집) == 연주 성향 및 평가 == 20세기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시대연주|원전연주]]의 1세대 주자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아르농쿠르의 원전연주는 후배인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나 [[존 엘리엇 가디너]]처럼 철두철미하게 당대의 음향을 재현하려고 하기 보다는 현대적인 연주와 당대 연주 사이에 일종의 절충을 택하고 있다. 전술했다시피 젊은 시절에는 상당히 급진적인 성향을 보여서 철저한 고음악의 재현을 주장했지만, 일단 지휘자로 성공한 이후에는 자신의 철학을 지키기 보다는 많이 타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런 이유로 아르농쿠르는 클래식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리는 지휘자가 됐다. 단적인 예로 그의 대표적인 레코딩인 베토벤 교향곡집(1991년 출반)에서 그는 고악기로는 제대로 연주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현대악기를 사용하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면서 트럼펫과 팀파니만 원전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했다. 자신이 평소 강조하던 연주 철학을 스스로 어겼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현대 악기로 고악기의 소리를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서 연주했다고 항변했는데, 같은 시기에 브뤼헨, 가디너, 노링턴, 호그우드 등 여러 지휘자들이 100% 시대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녹음했다는 사실을 볼 때 그의 항변은 많이 궁색하다. 호그우드, 가디너, 브뤼헨 등은 해석이 현대악기로 연주한 것과 대동소이하여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의미가 없다는 비판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아르농쿠르를 '사이비 원전 연주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는 옹호론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러한 논란과 비판의 시발점이 된 것은 다름아닌 아르농쿠르 자신의 주장이다. 원리주의자 코스프레를 하며 원전연주만이 진실이라고 현대적인 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물론 이러한 절충주의까지 모조리 사이비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젊은 날의 아르농쿠르 자신이었다. 아르농쿠르는 베토벤이 지휘했던 36명(교향곡 2번의 경우)의 오케스트라 인원까지 정확하게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작곡자 당대의 악기와 당대의 연주법으로 음악을 재현하는 것은 분명히 가치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르농쿠르는 "나는 항상 정격음악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정격 음악은 매우 위험한 단어이다. 나는 박물관 음악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원전 악기와 당대의 음악철학을 존중하되 거기에 얽매이기보다는 현대의 시대정신에 맞도록 재창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일단 음악성 측면에서 아르농쿠르가 당대의 연주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이다. 앞서 비판적으로 언급한 그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의 경우에도 이듬해 그라모폰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레코딩'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으며, 21세기 이후에는 베토벤 당대의 음악 전통과 현대의 음악 성향을 잘 조화시킨 일종의 '레퍼런스 연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한마디로 아르농쿠르는 젊은 시절 급진적인 원전주의자였지만 경험을 쌓은 이후에는 원전 연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의 음악적 성취를 이룩한 지휘자로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지휘자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